기악곡의 탄생
16세기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흐름은 전적으로 다성의 성악곡이 대부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언어와 결부되어 왔고 더구나 신을 찬양하기 위한 종교 음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전개되어 온 서양 음악의 흐름을 되돌아보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과정이었으며 따라서 기악은 쉽사리 독자적인 영역을 가질 수가 없었다. 중세에는 종교 음악에 기악을 도입하는 것은 이교적인 것을 상기시킨다고 해서 교회측으로부터 맹렬히 반대되었다. 그리고 기악은 가수가 여가를 이용해서 연주하는 일에 지나지 않았고, 기악 주자(특히 관악기 주자)가 가수보다도 낮은 대우를 받았으며, 악기 그 자체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던 것도 기악곡이 독립할 수 없었던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회화나 문학작품 등을 보면 참으로 갖가지 악기가 가수나 천사들과 함께 그려져 있어서 악기가 노래와 함께 있어야 했던 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실제로 악기 사용에 소극적이었던 종교음악에서는 악기에 상징적인 뜻을 갖게 함으로써 서서히 악기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여갔으며 세속 음악에 이르러서는 노래를 반주하고 장식하는 것으로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 대체로 중세 • 르네상스 시대의 성악곡은 노래를 불러도 되고, 임의의 악기로 연주해도 무방했다. 가수가 충분히 갖추어지지않으면 한 성부만을 악기로 연주할 수도 있었고 학기의 짜임새도 자유스러웠다. 다성 세속 가곡은 즐겨 악기로 연주되었 는데, 기악 주자는 마음 내키는 대로 성악으로는 연주하기 어려운 장식적인 음형을 삽입해서 선율에 변화를 주었다. 한편 작곡가들도 성악곡을 기악용으로 편곡하거나 성악곡의 양식을 흉내내서 새로운 기악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6세기는 기악곡이 탄생된 세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눈부신 속도로 기악곡이 선을 보이게 되었다. 또한 16세기에는 음악을 지지하는 층이 서민층으로 퍼지고, 세속 음악이나 악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것도 기악 음악이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악기에 관한 계몽적인 문헌이나 교본이 속어로 쓰여져서 라틴어를 해독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에게도 음악의 짜임새나 주법이 알기 쉽게 설명되기 시작했으며, 기악 작품도 많이 출판되어 기악은 급속하게 성장해 갔다.
기악곡의 형식
주로 16세기에 배양된 기악곡은 성악곡을 모델로 한 것 외에도 성악곡에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된 것, 변주곡 그리고 무곡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성악곡을 모델로 한 것은 플랑드르 악파의 폴리포니 기법을 구사하여 작곡된 모테트나 샹송 등을 그대로 악기로 합주하거나 건반 악기로 독주하는 것으로 발전하여 칸초네 (canzone 혹은 canzona ; 16세기 이탈 리아 세속 가곡의 명칭)라고 불리고 있다. 칸초네류에 속하는 작품으로는 리체르카레• 판타지아 • 소나타 등이 있다. 성악곡에 의존하지 않는 자유 형식의 것 으로는 전주곡(프렐류드) • 토카타 등의 건반 악기용 작품을 들 수가 있다. 전주곡은 의식이 있을 때 성악곡이 나오는 것을 준비하기 위한 오르간용의 짧은 도입부로 시작 되었다. 전주곡은 특정한 형식도 없고 즉흥적인 음형을 안정시킨 낮은 성부에 뒷받침되어 연주된다. 이 기법은 이윽고 토카타라는 보다 큰 악곡으로 발전해 갔다. 토카타는 '손을 댄다', '연주한다'는 뜻의 토카레(toc-care)를 어원으로 하는데 건반 위에서 즉흥적 악구를 펼치는 악곡으로서 이런 곡종은 건반 악기(오르간이나 하프시코드)의 특성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제3의 그룹인 변주곡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변주곡도 이른바 기악적인 음형을 전개하기에 알맞은 곡중이었으므로 거의 모든 악기를 위한 작품이 남겨져 있다. 마지막은 무곡이다. 무곡은 중세의 에스탕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악곡 중에서도 가장 오래 전부터 있던 곡종인데, 16세기는 '무곡의 세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각양 각색의 무곡이 있었으며 또 실제로 춤추어졌다. 기악곡은 이처럼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는데, 특히 몇 가지 음을 연주할 수 있는 건반 악기나 류트 분야에서는 악기의 개성을 끌어내려는 어법을 획득해 갔다. 그러나 기악곡이 성악곡과 대등한 취급을 받게 되고, 악기가 독자적인 어법과 기악에 알맞는 표현법을 갖게 된 것은 17세기에 들어온 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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